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여수 오동도 하멜공원 푸드트럭 입주자를 모십니다.

행사축제이벤트 홀로그램

by 라비코리아주식회사 2016. 2. 3. 22:35

본문

 여수 오동도 푸드트럭 입주자를 모십니다.

푸드트럭5대 안전검사 및 제반시설 포함 1년간 장사하실분

하멜표루기에 나오는 하멜 등대 앞 하멜공원 일원

하멜표루기 참조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 관한 서양인의 최초의 저술로서 당시 유럽인의 이목을 끌었다.

1653년(효종 4)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로 호크(Sparrow Hawk)호가 심한 풍랑으로 난파되어 선원 64명 중 36명이 중상을 입은 채 제주도산방산(山房山) 앞 바다에 상륙했다.

그들은 체포되어 13년 28일 동안 억류되었다가 8명이 탈출해 귀국했는데, 귀국선의 서기인 하멜이 한국에서 억류 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책의 내용과 간행 경위는 다음과 같다. 1653년 1월 10일 네덜란드를 떠난 포겔 스트루이스(Vogel Struuijs)호는 6월 1일 자바섬의 바다비아(Badavia)에 도착했다. 선원들은 그 곳에서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총독 명령에 따라 스페로 호크호로 대만(臺灣)의 안핑(安平)으로 향발, 6월 14일 도착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대만의 신임 총독으로 부임하는 네덜란드인 레세르(Lesser, C.)를 임지로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임무가 끝나자 다시 대만에서 일본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7월 30일 나가사키(長崎)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풍랑이 심해 8월 11일까지도 스페로 호크호는 대만 해협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

8월 15일 풍랑은 더욱 심해 선미(船尾)의 관망대가 떨어져 나갔고, 탈출용 작은 배도 잃어버렸다. 배 안에 물이 스며들어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선원들은 짐과 돛대마저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 한 선원이 육지가 보인다고 외쳤는데 그 곳이 바로 제주도 남해안이었다.

정박을 시도했으나 혹심한 풍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 거대한 파도가 거듭 선창으로 밀려들어 드디어 스페로 호크호는 난파되고 말았다. 64명의 선원 가운데 28명은 익사하고, 육지에 오른 생존자 36명은 서울로 호송되었다. 서울에서 2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다가 1656년 3월 전라도로 옮겨졌다.

그동안 14명이 죽고, 다시 1663년 생존자 22명은 여수·남원·순천으로 분산, 수용되었다. 이들은 잡역에 종사하면서 길고긴 고난의 억류 생활을 계속했는데, 어느 때는 구걸에 나서기도 하였다. 1628년(인조 6)에 표류한 같은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Weltevree, 朴燕)를 만났으나 동포를 만난 감격도 잠시일 뿐 고통스러운 생활은 계속되었다.

하멜이 억류 생활을 한 곳은 전라도 여수 좌수영이었다. 다행히 작은 배 한척을 마련해 먹을 것을 구하느라 부근의 섬들을 내왕하면서 조수·풍향 등을 잘 알게 되었다. 탈출 직전까지의 억류 생존자수는 모두 16명이었다.

탈출 비밀이 탄로날까 두려워 전원이 탈출하지 못하고 8명만이 1666년(현종 7) 9월 4일 야음을 틈타 탈출에 성공, 일본의 나가사키를 경유해 1668년 7월 암스테르담에 귀환했다. 탈출에 가담하지 않았던 나머지 8명도 2년 후 조선 정부의 인도적인 배려로 석방,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책에는 이들의 귀환 사실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에서 끝내 죽은 줄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은 1668년 암스테르담에서 3개 출판사에 의해 동시에 출간되었다. 이때 하멜은 13년 이상의 밀린 봉급을 동인도회사에 요구하느라 미처 고국에 돌아오기 전의 일이었다.

푸드트럭 문의시 연락처(032)811-2779 라비코리아주식회사

사업자 정보 표시
라비코리아(주) | 손완주 | 인천시 부평구 마분로15(부개동) | 사업자 등록번호 : 122-86-15597 | TEL : 032-811-2779 | Mail : lavita08@naver.com | 통신판매신고번호 : 제2018-인천부평-0580호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